
언제쯤, 아이들이 몇 살이 되면, 다 같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기저귀를 떼면? 혼자 걸을 수 있게되면? 젖을 떼면?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짧은 시간 안에 관광 명소에서 인증샷을 꼭 남겨야 하는 사람들에겐 아이들과 같이 다니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여행을 교과서 체험 학습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어차피 어디에서 무엇을 봤는 지 기억도 못할 텐데 어릴 때 데리고 다닐 필요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을 많이 보았고,
발리에서 배꼽도 떨어지지 않은 갓난 아기와 함께 여행 온 이들을 보면서 산후조리원에 수백만원 갖다 주느니 동남아의 리조트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고,
여행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적어도 몇 살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쓸데없는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여행 길에 아이를 넷 씩이나 낳고 10년동안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는,
그런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음 포털에 오마이뉴스 기사가 오른 것을 보고 꼭 만나고 싶어 메일을 썼다.
헤르만 가족 소개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16895
짧은 스페인어로 메일과 전화를 주고 받은 후 사나흘 만에 그들이 왔다.

해람이가 몹시 좋아했던 그들의 차, 1928년에 만들어진 거란다.
우리 집 주차장이 자동차 박물관이라도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구경을 하고 말을 걸어오곤 했다.
평균 속도는 시속 50~60km, 단조롭고 삭막한 고속도로보다 구불구불 사람 살이 가까이 볼 수 있는 국도로 다니는 것이 더 좋단다.
'자연바람 에어컨이야' 운전석 옆에 탄 적이 있는데 헤르만이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본을 거쳐 러시아를 간다면서 히터도 없이??? 입에서 막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이미 안데스 고원을 넘고 혹한의 알래스카까지 다녀온 것을...

우리 집에서 3~4일 머무를 예정이었는데 같이 놀다보니 여섯 밤을 자고, 날 수로 일주일을 꽉 채우고 떠났다.
'우리 집처럼 편하고 좋았어' 역시나 집 주인은 이런 인사가 듣기 좋은 법.
안방을 그들에게 주고 우리가 작은 방에서 잤는데, 그래서 우리도 마치 여행 온 기분이 들었었다.
함께 지낸 일주일 동안 몹시 들뜨고 즐거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애를 먹기도 하고 아가들은 불편하고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고...
하지만 온 가족이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낯설고 다른 길을 찾아 나가면서 부딪치고 깨어지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느낌과 생각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가치있는 일인가!
헤르만은 우리에게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정말 좋다고, 아이들이 어릴수록 더 쉽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Candelaria와 여행과 육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통하는 점이 많았다.
'파나마에 갔을 때 보까 델 또로에도 갔었어?'
'그럼!'
'별로 유명한 관광지는 아닌데...'
'그래서, 정말 좋았어. 파도가 꽤 높은 해변이었는데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더라구.'
'우리가 갔을 때도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Nobody on the beach! 동시에 같은 단어를 내뱉으며 한참 웃었다.)
'배를 타고 작은 섬들을 돌아보는 것도 했어?'
'그 작은 배 말하는 거지? 그거 타고 다니면서 스노쿨링 했었지. 바닷속이 정말 멋지더라.'
같은 장소를 여행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
잘 꾸며진 곳보다 수수하지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곳을 더 좋아하는 점에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코스타리카보다 니카라과가 더 좋더라는...)
육아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어릴 때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했고,
두 아이를 병원이 아니라 조산원에서 낳은 것(첫째, 둘째는 병원에서 낳았는데 셋째와 넷째는 산파의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하는 가운데 수중 분만을 했단다), 모유 수유와 천 기저귀 사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참 비슷했다.
여행이라는 것이 색다른 경험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기 마련인데 그런 상황에서 네 명의 아이들을 조율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 참 대단해 보였다.
Pampa와 수업을 하면서(평일 오전, 특별한 일이 없으면 Pampa에게 공부를 시킨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나머지 세 명의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 그 와중에 캠코더 촬영까지!
'아이들은 엄마의 기운으로 살아간다.' 열린가족 조산원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데 Cande를 보면서 이 말이 새삼 떠올랐다.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그녀의 에너지가 아이들이 건강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리라...

Pampa와 Tehue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학교를 안 보내도 되나?'
사람들은,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단다.
한때 몸담았던 회사에는 '성공공장'이라는 이름의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꽤 스트레스가 되는 회의 (회의라기보다 발표회?)가 있었다.
회장님과 임원진 앞에서 자신의 업무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인데 발표자가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보이는지, 계획이 얼마나 실현가능한 것인지 등을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기준으로 평가하고 토론하곤 했다.
실질적인 업무에 치명적인 방해가 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들로 가득한 시간이었는데
그 이름이 '성공공장'인 이유는
어느날 회장님이 공장에서 이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인 '우루X'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완제품으로 포장되는 단계를 쭈욱 지켜보시다가 문득 인간의 '성공'이라는 것도 적재 적소에 필요한 것들을 조합하여 무수히 찍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 회사 모든 직원을 '성공'시키는 '공장'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름난 학원에 보내고 좋은 교구와 교재를 사주어 좋은 대학 보내고,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돈 많이 버는 전문직을 갖게하겠다는 수많은 부모들의 생각이 '성공 공장'의 발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기업주 입장에서 보는 개인의 '성공'이나 수많은 부모들의 교육적 목표가 돈과 소위 말하는 스펙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개개인의 개성과 가치관을 무시한 '성공공장'이 직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처럼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일관된 원칙없이는 아무리 좋은 교재라도 제대로 체화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롭게 꿈꾸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누리는 것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것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얻지 못하는 것들을 충분히 배우고 있는 것이다.

Paloma는 스페인어로 비둘기라는 뜻이다.
네 명의 아이들 중에 우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서 정이 많이 간다.
나중에는 엄마가 같이 있는데도 쉬가 마려우면 나를 찾곤했다는...

Wallaby.
그들이 다녀가고 나서 어린이 대공원에 갔다가 왈라비가 캥거루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 국적의 왈라비..., 네 명의 아이들이 모두 다른 국적을 갖고 태어났다.
아루와 해람이가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
사람들이 떠나자마자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눈곱이 심하게 끼고, 콧물, 기침, 가래가 일주일이 넘었는데 잘 낫질 않는다. 집에 어린 손님을 들이면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누군가 그러던데 집에 어린 아이들이 많아져서 나름 긴장하고 힘들었었나...
낯선 사람들, 생긴 모습도 많이 다르고 말도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아이들에게 무척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큰 아이들은 서로 관심은 있으면서도 서먹해서인지 끝까지 선뜻 다가서지 못하던데 왈라비, 해람이, 팔로마는 나중에는 아무도 알아 듣지 못하는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도 하고 장난감을 주거니 뺏거니 하며 잘 어울려 놀았다. 색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우리 아이들도 여행 비슷한 경험을 한 셈이다.
아이들이 아프면 안타까운 마음에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나도 같이 지치고 힘들어지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의 기운이,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이 내게 전해진 때문일까, 아이들이 심하게 오랫동안 아픈데도 나는 그닥 힘들지 않다.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낫는 거야, 곧 좋아질거야.
나 자신에게, 아이들에게도, 나도 모르게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
Atrapa tu sueño! (Spark your dream!)
그들을 직접 만났기 때문에, 같은 지역을 여행한 비슷한 경험 때문에 이 책에 더욱 끌리는 점도 있지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용기내어 한 발 더 내 딛으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마법 같은 책이다.
캐러밴을 사서 아이들과 호주 일주를 하면 좋겠지
호주에서 란칠레를 타고 타히티, 이스터 섬 거쳐서 남미를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
Herman이 살타에 정착할거라고 하니까 아르헨 북쪽을 여행하는 것도 좋을테고
잠깐, 나는 터키가 꼭 가보고 싶던데...
터키 좋지...동유럽도 좋고, 한 여름 북유럽은 돈이 많이 들겠지?
아, 맞다. 아루 임신했을 때 아루 데리고 오로라보러 캐나다에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좌린과 눈만 맞으면 여행 이야기...
일단, 출발일을 정하는 거야.
Herman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자꾸 충동질을 하니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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