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7
뽀이뻿(캄보디아쪽 국경 도시)에서 씨엠립까지 미니 버스는 예상보다 좋았다. 요란한 엔진 소리,덜컹거리는 창문은 잘 닫히지도 않고, 딱딱한 의자에 짐짝처럼 비좁게 앉아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생각과 달리 제대로 된 차에 에어컨도 잘 나왔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좌석이 좁은 것, 게다가 제일 늦게 타는 바람에 통로에 접이 의자를 펴고 앉았더니 등받이가 낮아 조금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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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앉은 프랑스 커플은 여행사 직원들과 수다를 떨었다. 에어 프랑스 승무원이라는데 휴가가 끝나면 카오산에서 땋은 머리를 풀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아침 일곱시에 나와서 오랜 시간 차 안에 앉아 있으려니 모두들 좀이 쑤시는 듯 몸을 꼬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옆에 앉은 사람들과 떠들기 시작했다. 울퉁 불퉁 비포장 길에서 차가 위 아래로 흔들릴 때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하아린 옆에 앉은 프랑스 아저씨는 15년전, 캄보디아가 공산 정권이었을 때 이미 앙코르 왓을 여행했단다. 일년에 휴가가 7주라서 해마다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우리는 일년에 휴가가 일주일이라고 했더니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십년전에는 한국에도 다녀왔다고. 여행하면서 한국을 다녀온 사람을 몇 번 만났지만 이렇게 제대로 여행을 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춘천, DMZ 주변(양구 이야기가 나오자 좌린은 아주 반가워했다^^), 속초,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경주를 보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가 목포항으로 와서 전라도 사찰을 다녔다고 했다. 가을, 산속의 절들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래… 가을 산이 참 예쁘지. 피라미드, 앙코르왓 같은 웅장한 유적지와는 다르지만, 세월의 흔적을 간직해온 사찰들, 우리의 절은 무엇보다 그것이 잊혀진 과거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지금까지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것 같다. 교통이 편해서 큰 불편은 없었고, 젓가락질을 못해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사진 작가니?
오른쪽에 앉은 여자가 내 카메라 가방을 보고 물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그녀는 프리랜서 사진 작가. 우리 사진집을 보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좌린과 나의 사진 경향을 묻더니 신기하게도 몇 장 안되는 내 사진을 잘도 찾아 내었다.
사진으로 밥 벌이 해도 되겠네.
사진을 전공하지 않아 사진판에 발 들이기 어렵다고 했더니 책을 한 권 더 내면 수월해질거란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도 버는 것,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꿈인데…… 그런데 고매한 주류 사진계에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거니와 또 사진 찍는 것이 돈 버는 일이 될 때 과연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녀 역시 좋아서 찍는 사진과 신문사와 계약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길에서 사진을 파는 것, 어떠한 타이틀이나 조건없이 사진 그 자체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희망 시장은 참 매력적인 공간이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키가 작은 여자 셋, 여느 여행자들과 분위기가 좀 달랐다. 굽 높은 샌들을 신은 걸로 보아 장기 배낭 여행이라기 보다 짧은 휴가를 다니러 온 듯.
베트남!
우리가 하노이에 들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우리 친구 빈(Vinh)이 생각났다. 오클랜드에서 어학 연수할 때, 그 날은 가정법을 연습하는 날이었는데 Vinh이랑 짝이 되었다.
네가 30년 전에 태어났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전쟁에 나가 있겠지.
너무 현실적인 그의 대답에 나는 좀 놀랐다. 그의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해서 다리 한 쪽을 잃었다고 했다. 그의 직업은 건축사, 200불 한달 월급으로 세계 여행은 꿈도 꿀수 없다며 우리를 몹시 부러워했다. 우리가 오클랜드를 떠나기 전, 그의 아파트에서 베트남 파티를 열어 주었고, 작년, 그가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 런던의 베트남 식당에서 그의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우정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따뜻한 마음씨, 베트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한국이라고 하니 과연 베트남 아가씨들은 드라마와 원빈 이야기를 한다. 수도 이전 문제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에 대한 관심이 정말 남다르다.
저녁 여덟시가 넘어 씨엠립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여행사 버스를 타지 않고 북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에서 택시를 탔으면 더 일찍 도착했을텐데…… 여행사 버스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긴 했으나, 덕분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인연은 잠시 스쳐가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편한 구석이 있다. 각자 삶의 내력은 달라도, 이 버스를 타게 된 경위는 몰라도, 여행을 떠나왔고 그래서 같은 버스에 타고 있다는 사실은 뭔가를 함께 공모한 것처럼 은연중에 공감대를 느끼게 해준다.
국경에서!
점심 무렵 아란에 도착했을 때 버스가 국경으로 가지 않고 여행사를 겸한 식당에 우리를 내려줬다. 비자 신청을 하란다. 식당 벽을 보니 ‘캄보디아 비자 1200밧’이라고 크게 영어로 써 있다. 국경에서 직접 받으면 1000밧인데 자기들이 대행을 해주고 200밧은 수수료로 챙기겠다는 것. 다른 여행자들은 순순히 비자 신청서를 쓰고 돈을 내는데 우리는 국경에서 우리가 직접 받겠다고 했더니 대뜸 ‘너 코리안이냐?’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for Korean, 천밧!’ 또렷한 한국말로 천 밧!이란다. 벽에 붙은 가격표를 가리키니 그것은 유러피언 가격이라나.
늦게 도착해서 여행사에서 내려준 숙소 대신 한국인에게 평판 좋은 ‘롱라이브’에 짐을 풀었다.
이번 여행은 가이드 북도 없이 왔는데 인터넷에서 읽은 경험담과 최신 정보가 아주 쓸만하네.
어쨌든, 열 네 시간만에 씨엠립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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