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이야기 :: 2004/11/17 15:58![]() (사진| 홍대근처, 2004년 8월) (음악|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중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2차 장소로 몰려가고 우리 둘만 남았다. 나는 말할 기력조차 없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응, 응, 그래,그래, 하아린의 이야기에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희망시장에서 사진을 판지 두달째. 천막을 폈다 접었다 비와 숨바꼭질하며 비가 그치기만을 바랬는데 장마뒤에 찾아온 찜통더위는 더 큰 재앙이었다.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 후끈한 공기. 두통과 호흡곤란을 느끼며 뜨끈뜨끈 달구어진 아스팔트를 저주했다. 비틀어 짜면 땀이 뚝뚝 떨어질 듯 땀에 절은 몸은 몇 주간 누적된 피로에 지쳐 있었고 낮동안 사진 팔며 흥분된 기분과 내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겹쳐 머리가 몹시 무거웠다. 나는 멍하니 초점 흐린 눈으로 인적없는 골목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만고만하게 비슷하게 생긴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밤 열두시의 주택가에는 이따금 고양이 한마리가 사뿐히 지나갈 뿐 조용했다. 두어블럭 뒤로 줄지어 들어선 고기집과 술집에서는 더위도 시간도 잊은채 지글지글 고기가 익고 술잔이 부딪치고 있을 터였다. 골목길,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삼십미터 정도 떨어진 가로등 아래 뭔가 하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까만 치마에 흰 모시 상의를 걸친 할머니, 깡마르고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쓰레기 봉지를 열심히 뒤지고 있었다. 저런 게 바로 도시 풍경이지... 하아린의 혼잣말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대리운전은 언제 온대?" "다 왔다는데. 근처래." 휴우...딱딱한 의자에 다시 몸을 의지하며 대리운전 아저씨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차 뒷자리에 쓰러져 잠에 빠지는 상상을 한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 "정말, 시간이 꽤 흘렀는데..." 함께 어울렸던 한무리의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다시 지나가고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하아린이 다른 회사를 알아 보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을 때, 멀리서부터 우리를 향해 꾸벅꾸벅 절을하며 그녀가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쪽은 처음이라서 헤맸어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꾸벅꾸벅,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하는 그녀. 대리운전기사라면 당연히 남자, 꽤 거친 남자일거라고 무의식적으로 떠올렸던 내 앞에 나만큼 작고 나보다 어려보이는 그녀의 출현은 좀 당황스러웠다. 대리운전 경력이 2년이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운전실력은 서툴러 보였다. 빌라의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오기 위해 전후진을 반복하면서 허둥지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택시비보다 더 싼 대리 운전. 바로 어제 대리운전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었다. 쓰러져 자겠다는 욕망을 잊은채 나는 그녀와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건당 그녀가 받는 돈은 오천원, 거기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택시비 사천원. 암사동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고 천호동으로 나가 다음 연락을 기다릴 거라고 했다. 이혜영이 택시기사로 나온 영화에서 이른 아침 술취한 손님이 토한 것을 치우다가 걸레를 집어던지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한밤중에 술취한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험한 꼴도 많이 당할텐데... 밤새도록 취객들을 태우고 동분서주하다가 새벽 첫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짠해졌다. 그녀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그녀는 떠올리기 싫은 최악의 남자들도 있었지만, 커피 한 잔 주며 격려해주는 좋은 아저씨들도 있다며 웃어 보였다. 나는 희망시장에서 벌은 돈 중에 오천원짜리 한 장을 택시비하라고 쥐어주었다. 어설픈 동정일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는 주고 누구는 받은 것이 아니라 서로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털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끔찍하게 더웠던 여름 날, 몹시 지쳐있던 자신에게 서로에게 말.걸.기. (2004-08-02) 올해 여름을 말하라면 모두 이례적인 더위에 대해 한마디씩 할 것이다. 나역시 찜통 더위속의 희망시장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희망시장에 사진을 들고 나가 보면 어떨까? 지난 4월 방콕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이 일이, 이 공간이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중요해질 줄은 몰랐다. 이제는 찬바람이 불고 어느새 추운 날씨를 걱정할 때가 되었고 2주후면 끝난다니, 무척 아쉽다. 과연 누가 우리 사진을 한 장이라도 사 줄까, 마음 졸였었는데 많은 이들이 열심히 봐주고, 느낌을 더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우리 사진을 보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심통부리는데도 꾸준히 재미있게 해온 좌린에게 감사._ Trackback Address :: http://www.beanytime.com/tt/trackback/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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