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꿈에 관하여 :: 2011/03/10 02:21왈링왈링 섬에 온 첫날 아침 바로 앞 섬에 수영해서 갈 수도 있다는 에드의 말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 먹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십여년전 내게 생존수영을 가르쳐준 좌린 선생이 물었다. 그럼, 이 정도 쯤이야. 얘들아 엄마 수영해서 저 앞에 보이는 섬에 다녀올게. 핀을 가져가라는 에드의 충고를 무시하고 스노클링 마스크만 챙겨서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물빛은 맑고 투명한 에매랄드, 잔잔한 파도가 몸에 와 닿았다. 하늘, 바다, 나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온 몸에 전해졌다. 짜릿했다. 헉헉 숨이차오를 때까지 팔을 젓다가 몸을 뒤집어 배영자세로 하늘을 보고 누워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재미있는 것에 대한 반응이나 상대방을 의식한 사회성 띤 웃음이 아니라 뱃속에서, 저 깊은 내 안에서 아주 원초적인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내가 쏟아져 나왔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코론행 비행기에서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한쌍의 연인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애정행각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억지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 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이 보였다. 80인승, 가뜩이나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가뜩이나 큰 두 사람이 엉켜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타인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는 이십대의 사랑도 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한번도 내 나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삼십대 후반의 내 나이가 무척 많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불현듯 인생이란 것이 지나가버리는 한 때인 것을 소심하게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내겐 재능이 없어,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고 주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나는 주어진 상황에 열심인 아이였다. 내 글에서 종종 언급되는 모범생 기질 때문에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그 댓가로 부모님,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편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에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주변을 의식하며 살아온 내 삶이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내게 바라는 것말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나. 해야하는 것 말고 내 모든 열정을 다 바칠 수 있을만큼 내가 하고 싶은 것,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 스무살의 고민은 진짜 내 꿈을 찾고자하는 것이었다. 우연히 사진 동아리에 가입을 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어떤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대학 생활내내 사진 동아리에 몰두했다. 하지만 정해진 길을 가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었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내게 사진적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동아리 핑계로 수업에 자주 빠지다가 지도교수님께 불려갔을 때 교수님은 왜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냐고 질책하셨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지름길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주며 나를 유혹했다. 그에 반해 내가 가고 싶은 다큐 사진가의 길은 막연하고 깜깜했다. 하고 싶다는 동물적인 감각만으로 더듬더듬 찾아가야하는 미지의 길... 졸업을 앞두고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러다가 계속 미뤄두고 있었던 지름길을 향한 막차마저 놓칠 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일년을 한치의 여유도 없이 구멍난 학점을 채우느라 바쁘게 보냈고 약사고시를 봤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차곡차곡 모았던 카메라와 렌즈들을 택시에서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그리고 꿈도 잊었다. 코론행 비행기에서 서로의 몸을 탐하는 한쌍의 연인을 보다가 안될거라고, 못할 거라고 지레 겁을 먹고 돌아섰던 이십대 중반의 나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네가 가진 것이 많아서 그래.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자하는 네게 독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 둘 중에 하나는, 무언가는 포기해야 할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었다. 프리마켓에서 사진을 팔면서 내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사진집까지 내게 된 것은 무척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사진으로는 길이 안보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몇군데 면접을 보고 회사를 들어가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쉬운 선택이었다. 나는 마치 도망갈 곳을 찾느라 계속 뒤를 돌아보며 뛰는 사람 같았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재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두려움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기 때문이었다. 도망칠 곳이 있었기 때문에 나아갈 수 없었고 그 것이 내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던 선배의 말처럼 그 때문에 오히려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왈링왈링 앞 바다 살랑살랑 가벼운 파도를 느끼며 기분 좋게 떠 있었다. 바다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모양이며 색깔, 크기,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각양각색의 물고기와 산호초가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누가 더 예쁘고 못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회사 생활은 나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의 성공, 직급, 돈과 명예, 그런 것들은 내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속에서 나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인생사 지나가버리는 한 때인 것을 무엇을 망설이고 주저하고 있나. 머리아프게 계산하고 따져봐야 결국 자신의 마음이 정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더이상 뒤 돌아보지 말자고, 내 마음이 정하는 그 곳으로 끝까지 한 번 가보자고 다짐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섬에서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바닷속 풍경에 사로잡혀 물고기 떼를 따라 산호숲을 따라 나는 지금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다. 마음 속에 환한 빛 하나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beanytime.com/tt/trackback/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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