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업뎃! :: 2006/07/12 17:22

요즘, 나날이 반복되면서 조금의 나아짐도 보이지 않는 가사 노동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루와 함께 지내는 시간 외의 남는 시간 대부분을 집안 일을 하며 보낸다. 아루가 잠든 사이 부리나케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어쩌다 짬이 나서 인터넷 뉴스를 읽으면 벌써 저녁, 좌린이 퇴근하고 돌아와서 기저귀를 빨아 널고 나면 새벽 한 두시가 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이 안나고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집안 일이라더니...그렇다고 내가 집안을 반들반들 윤이 나게 극성을 떠는 것도 아니고, 예쁘게 꾸미고 단장하는 것도 아닌데...고작 밥하기, 설거지, 청소, 빨래, 기본적인 것들만 하는데도 버거울 때가 있다. 날마다 하는 집안 일이라는 것이 오늘은 여기까지 했으니 내일은 그 다음부터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한 일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에, 분명히 어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는데 오늘 또다시 마룻바닥에는 머리카락과 먼지들이 굴러다닌다는 사실에, 날마다 일정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하여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다는 것에, 조금은 짜증이 난다. 도대체 이 먼지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먼지들은 자연발생하는 게 아닐까, 청소기를 이틀에 한 번 돌려도 먼지 덩어리들이 뭉쳐 나오는 것을 보면, 예전에는 그렇게 안 치우고 어떻게 그리 잘 살았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는 '전업 주부'로서의 타이틀을 달고나니 예전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싱크대의 찌든 때라든지, 잡동사니들을 무질서하게 담아놓은 상자들이라든지, 구석구석의 먼지들이 자꾸만 눈에 띄여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내 저것들을 싹 정리하고 닦아 놓으리라, 비장하게 마음을 먹지만, 하루 종일 아루를 돌보고 틈틈이 밥 해먹고 치우고 간단한 청소를 하다보면 마음과 달리 손이 잘 가지지가 않는다. 집안 상태에 대한 나의 기대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데 시간과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쌓일 수 밖에.
몇일 전, 아루가 안아달라고 하루 종일 보채는 바람에 안고 어르다보니 저녁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아루를 겨우 재우고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아 머릿속으로 청소를 시작해 볼까, 설거지를 먼저 할까, 하다가 퍼뜩, 내가 이렇게 피곤하고 지쳐서 굳이 청소며 설거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 주부가 되었다는 자각에, 잘해내겠다는 욕심 때문에, 어느 순간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끌려다니게 되었구나...갑자기 달라진 생활에 잘하려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조금 무리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산원에서 아루를 낳고 며칠 지내는 동안 좌린은 밥을 먹고 나면 꼬박꼬박 담배를 피우러 나가곤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딱히 담배를 피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루가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의 생활과 마음에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그래도, 오랫동안 해 오던 이런 습관적인 행동은 해야할 필요를 느껴서 그랬단다. 듣고보니 정말, 상황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장치들을 의식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겠다 싶다.
아루가 태어난 지 두달 조금 지났다.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지던 아루가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모습을 보며 아이 키우는 맛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이제 나도 정신을 좀 차리고! 내 생활을 좀 돌보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간만의 업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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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영 | 2006/07/15 11: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맘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아루가 건강히 잘크고 있음에 감사하고..
    든든한 버팀목도 있으니 기운내세요. ^^
    날이 흐려서 이런날은 더욱더 센치해지게 마련..
    저야 수비니를 시어매가 보고 계시지만..
    (솔직히 시어매가 더 힘들고 짜증만땅입니다.. ^^;;)
    전업주부.. 이게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힘든말인지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아루가.. 6,7개월이 되면 정말로 수월할껍니다.
    조금만 참으시구요.. ^^

    아참~ 저 누군지 기억하세요? ㅎㅎ

  • puca | 2006/07/16 07: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가슴에 팍팍 와닿습니다.
    집안일이 힘든 것은, 그 모든 것이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고, 잠시라도 하지 않는다면 일의 양이 곧바로 두세배 많아진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육아휴직으로 전업주부가 된지 1년이 다되어가는데도 아직도 힘이 듭니다. ㅜ.ㅠ
    아루가 조금 더 크면 말도 조금씩 알아듣고 혼자 놀기도 하기때문에 분명 수월해집니다만, 그보다 조금 더 크면 스스로 고집도 생기고 활동량도 많아지기때문에 다시 힘들어질지도 몰라요(제 단계인듯^^;). 힘내시기 바랍니다!

    * 먼지는 자연발생되는 것이 맞습니다. -_-;

  • 나무야 | 2006/07/16 13: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니님의 글을 읽다 보니 대학 시절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끝없는 집안일 반복 또 반복~
    ...먹는 일만 해도 하루에 세번 일주일에 스물한번 한달에 아흔번 일년이면 천번이 넘네~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을 올리는 시지프스의 노동처럼~

    정말 명곡이었다는 생각을 지금은 하게 되죠...

  • 씬디 | 2006/07/16 23: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니님 전업주부 되셨군요..
    저도 애기때문에 전업주부되었었는데..지금도 그렇고..
    비니님 글을 읽으면서 저의 지난 몇년도 되돌아 보게되더군요.
    괜히 짜증도 났었고 그러다가도 하영(딸이름)이 보면 행복도 해지고 남편 늦게 오면 더 우울해지고..괜히 시비 붙고 위로받고..그랬던거 같아요..^^
    집안일 잘하려고 하지말아요.
    그거 사회생활도 오래 해본 제 경험상..집안일이 더 어려워요.
    그냥 조금 지저분해도 애기 건강에 문제 별로 없으니까..걱정말아요..ㅎㅎㅎ
    전 대충 길렀어요. 그래도 모유때문인지 건강한 편이었죠.
    그냥 아루아빠가 말레이지아 출장온다는 생각에 비니님 홈피 생각나서 들려봤어요.
    잘 지내요~
    건강한 생각 건강한 엄마~

  • beany | 2006/07/17 09: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히영/당연히! 기억하죠. 제 기억력이 그리 띄엄띄엄한 것만은 아닙니다요~
    puca/역시, 자연발생하는 것이었군요,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믿기 어렵더라니... 좌린도 내년에 육아휴직을 내서 저와 바통터치를 하고 싶어하는데 좌린이 집에서 아루를 보면 제가 회사에 나간 사이 둘이서 정신없이 어지르고 잘도 놀겠죠. 집안의 위생 상태가 상당히 걱정 됩니다.
    나무야/그리 비관적으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데 정말 가슴에 와 닿네요.
    씬디/좌린 출장가면 만나겠네요. 저도 마음은 따라가고 싶은데..., 아루가 조금 더 크면 정말 따라가야지!

  • 슈아 | 2006/07/17 17:4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지...생활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 같아. 그래서 나도 미루의 물건으로 집을 채우지 않으려고 서랍 하나만을 미루 것으로 해놓았는데 그래도 넘쳐나는 살림은 어쩔 수 없는 듯...그래도 나는 나이고 싶지. 나 누굴까? 헤헤...미루를 식구로 둔 사람이지. 헤헤 곧 봐~~~ 애 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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